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커티스 르메이 (문단 편집) === [[폭격기무적론|폭격 만능주의]] === 그 당시엔 전략 폭격하면 르메이 장군을 떠올릴 정도로,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전략 폭격의 당대 최고 전문가였다. 또한 주변 국가, 특히 일본의 방공망은 빠삭하게 알고 있던 그였기 때문에 폭격하면 르메이 장군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말 그대로 폭격의 달인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장의 양상이 바뀌면서 그의 폭격 만능론은 빛을 잃게 되었다. 미 공군은 그의 이론대로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만들겠다고 주장하며[* 초기 계획만 구상하고는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65년도에 이미 공군을 나왔다.] [[롤링썬더 작전|엄청난 양의 폭탄을 베트남에 쏟아부었으나]], 그 효율성은 극악이었다. 무차별 융단 폭격을 해도 사람 한 명 사살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이미 폭격은 전략 폭격, 융단 폭격에서 전술 폭격, 정밀 타격으로 그 양상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 때와는 다른 시대가 온 것. 애초 한국전쟁은 (처참한 생산력은 차치하고) 후방 보급지대와 전선이 분리된 전형적인 정규전 전장이었고 전선이 고착되어 이를 타개하는데 폭격이 유용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그렇지 못했고, 앞으로의 전장도 고지전보다는 기동전/국지전 위주가 될 것이기에 융단폭격은 설 자리가 없다. 예전처럼 '대규모 공장지대'라는 것이 없고 여러 도시 및 지방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융단폭격을 할래야 할 곳이 없다. 또한 그는 핵 폭격기인 [[XB-70]] 설계를 진두지휘했으나 이 역시 유도 미사일 개발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도 미사일 개발 계획은 이후 [[순항 미사일]]이 되어 걸프전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이미 그의 폭격 이론은 정밀성과 가성비를 추구하는 현대 전장에서 상당히 케케묵은 생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대에 맞춰 새로운 병법이나 군사 기술을 단련하면 좋았을텐데 오직 폭격과 공군만 밀고 나가다 후반에 빛이 바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커티스 르메이가 [[도쿄 대공습]] 등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주요 요충지를 신나게 폭격한 인물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국내 인터넷 초창기에는 밀덕들을 중심으로 소위 '도쿄핫 쉐프'라든가 '석기시대 마니아' 같은 밈으로 르메이를 찬양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들도 그렇게 태워버렸다는 게''' 알려지면서 지나친 폭격 맹신론자이자 전쟁광으로 묘사되는 빈도가 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